1887년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창안하여 발표했으나, 그 언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도달하기까지는 한 세대가 더 걸렸다. 일본에스페란토협회 기관지 「La Japana Esperantisto」(1906년 12월호)에 “고종황제가 에스페란토의 편리함에 감탄하여 열심히 연구 중이라고, 왕궁을 출입하는 사람이 말했다”라는 기사가 실렸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 관계 기록을 찾을 수 없고, 대개는 홍명희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상해에서 에스페란토를 학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뒤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안서 김억이 1916년 8월 동경에서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유봉영이 1918년에, 이어 정지용, 황석우, 변영로, 오상순 등 문인들이 에스페란토를 학습했다. 여기에 부산지역의 에스페란토 운동 관련 사항을 간략히 정리한다.
1918년 당시 조선에 주소를 둔 에스페란티스토의 수효는 8명이었으나, 부산 소재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2명이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아니었나 싶다.
1920년 김억이 문예동인지 「폐허」 창간호(1920년 7월) 표지에 에스페란토 시 La Ruino(폐허)를 싣다. 김억은 그해 7월 서울 YMCA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강습회를 개최한다. 여기서 신봉조(1900-1992년. 교육자, 이화재단 이사장,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등 역임)가 에스페란토를 배운다.
7월 31일 김억을 중심으로 조선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o-Asocio)가 창립되다.
문인, 언론인들에 의해 에스페란토가 소개된다. 박헌영, 정지용 등이 에스페란토를 배워 문학이나 사회주의 활동에 활용하다.
1922년 11월 일본인 오오야마 토끼오(大山時雄, 경성에스페란토연구회 회원)가 부산유치원에서 제1회 부산강습회를 개최하고, 부산사범학교, 부산상업학교에 에스페란토단체인 녹성회를 조직하다.
1923년 신봉조가 「강습용 에스페란토독본」(한국 최초 에스페란토 교재)을 발행하다.
민족사인 이종률(李鍾律, 일명 이균, 1902-1989, 부산대 교수, 부산일보 ‧ 조선일보 논설위원 역임)이 「신생활」(강매 발행)에서 ‘인류애의 고조를 타고난 자멘호프’를 읽고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갖게 되다.
1924년 이종률, 서울배재고보 재학 중에 신봉조, 강매 등을 통해 에스페란토를 학습하다.
5월 1개월 코스로 부산 일본기독교회에서 매주 두 차례(화, 금) 강습회가 열림. 강사는 농대생 小池英三(일본인).
8월 백남규(1891-1956: 수학자, 교육자)가 부산 영주동 노동야학교에서 강습회를 개최하다, 30여명 참석. <동아일보>
1927년 8월 백남규가 부산에서 초급강습회를 개최하다. 17명 학습자 중 부산 시민은 김옥주, 서갑조, 임용길, 김시엽 등.
1929년 11월 20일 부산에스페란토연구회가 강습회를 개최하다.
1930년대 후반부터 해방되기까지 홍형의가 에스페란토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운동은 침체되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우생, 이재현 등이 일제의 침략행위와 중국의 항전실황을 「Orienta Kuriero」(동양소식) 잡지를 통해 에스페란토로 해외에 알리다.
1940년대에 석주명(1908-1950: 나비박사)은 학술논문 요약을 에스페란토로 쓰다.
1945년 12월 15일, 8.15 광복 후 에스페란토운동을 정비하여 서울에서 한국에스페란토학회(Korea Esperanto-Instituto)를 창립하다. 발기인: 김억 백남규 석주명 유기동 이균(이종률) 김교영 신봉조 이정모 장석태 나원화 송창용 서병택 홍형의 등, 재경 에스페란티스토.
1949년 이재현(1917-1997, 독립운동가,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역임)이 당시 부산 미공보원 도서관원으로 근무하며, 에스페란토 전시회를 개최하고 에스페란토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 기관지 「La Nove Bakito」를 공보부의 허가를 얻어 발행하다.
1950년, 이재현이 부산에서 “Busan Esperanto-Klubo"를 조직하고, 강습회를 개최하며, 기관지 「La Fonto」를 발행하다. 5월 24일(6.25 전쟁 발발 한 달 전)에 에스페란토 초급강습을 시작하다.
1951년 5월 이재현은 부산에서 기관지 「La Ariran」(N-ro 1) 발행하고, 「에스페란토-한국어 사전」(1969년, 진보재) 편집 작업 착수하다. 한편으로 학습서 「Esperanto-Lernolibro」를 유인물로 발행하다.
8월 홍형의 대구에서 에스페란토 강습회를 열다. 1945년에 서울에서 조직된 한국에스페란토학회(Korea Esperanto-Instituto)가 6.25 동란으로 대구로 옮겨져 대구가 에스페란토 운동의 중심지가 되다.
부산대학교 정치학 교수로 부임한 산수 이종률은 부산 동래에 거주하며, 민주-자주-통일을 근간으로 하는 조직을 결성하다.
1954년 성태기, 청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에 제2외국어(홍형의 지도)로 에스페란토 입문.
1958년 이종현, 청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에 제2외국어(홍형의 지도)로 에스페란토 입문.
1963년 12월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역대표로 권익 씨를 추천하다.
1972년 10월 부산에서 에스페란토고려소학회를 설립하고 인사편지를 발송하다. 같은 해 12월 23일에는 경북에스페란토학회와 부산에스페란토고려소학회가 남성여고에서 공동으로 제95회 에스페란토 축제 행사를 열다.
12월 25일 부산일보에 박지홍 교수의 강연초록 ‘민족언어와 에스페란토’ 실리다.
1973년 7월 7일-12일 한국에스페란토청년연합회가 부산공보관에서 에스페란토전시회를 개최하고, 7월 25일-8월 22일 초급강습회(지도 서길수)를 개최하다. 280명 참가. 박기완, 선용(아동문학가 ․ 방송인), 임태규, 허성 등 입문.
8월 10일 ‘서울 문화권 에스페란토운동의 이해화 통일화 활력화를 위한 조언적 의견서’를 에스페란토고려소학회 사무장(우창고) 명의로 배포하여 여러 갈래로 나눠 있던 에스페란토단체들의 통합을 요구하다. 11월 5일-12월 5일 에스페란토고려소학회 주최로 초급 중급강습회 개최. 김치중, 이치우, 우창고, 권익, 허성 지도. 12월에는 남성여고에서 경북에스페란토학회와 에스페란토고려소학회가 공동으로 제96회 에스페란토 축제 행사를 열다.
1975년 8월 31일 분열되어 있던 국내 에스페란토 단체들이 한국에스페란토협회(Korea Esperanto-Asocio)라는 이름으로 통합되다. 부산의 이종률, 이용기, 박지홍 교수, 대구 이종하 교수 등이 통합 활동에 참여하다.
제경호(Hirundo), 최상범(Bonĉo), 이홍진(Ario) 입문.
1976년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장: 이용기(부산대학교 교수).
6월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부회장 Woessink 부부, 부산 방문.
7월 부산 YMCA 시민강습회(임태규 지도, 30명 참가).
부산에스페란토회(Pusan Esperanto-Societo) 설립 (권익 주도).
1977년 5월 부산대학교 에스페란토학회 전시회 및 강습회.
1980년 1월 7일-25일 초량 YMCA에서 대중 강습회(지도 박기완 ․ 허성) 개최. 김상우, 김정미, 안현아, 이현우, 임용길, 장정렬, 정찬종 등 에스페란토 입문. 동아리 Rondo Fajrero(초대회장 김상우)가 창립되고, 부산대학교 에스페란토학회(4월), 부산산업대(경성대학교 전신) 에스페란토학회(4월), 동아대학교 에스페란토 클루보(9월)가 창립되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에스페란토가 널리 알려지다.
부산대 강습회에서 구혜점, 김덕자, 박미숙, 이계영, 조일록, 채흥기 등 입문.
부산산업대 강습회에서 최향숙 입문.
계엄령 하에서 시민강습(부산 YMCA, 이현우 지도), 김경미 입문.
7월 2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회(회장 이종하) 결성. 시민들을 위한 초급, 중급, 고급 강습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다.
박정섭 에스페란토입문.
1977년 12월 박지홍 교수(부산대학교) ‘한국말과 Esperanto의 견줌’ 논문(부산대학교 사대논문집 제4집) 발표.
1981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하. 부지부장: 선용 ‧ 이동영. 총무: 허성.
3월 각 대학 초급 강습회를 통해 김정택(Mopso), 신정화(부산대), 박준호(Brua), 오기숙(Granda), 이동후, 이옥자(Perlo), 김이권, 배철한, 류재경(동아대), 백순조(Cigno), 설미영(Sciuro, 부산여대) 등 에스페란토 입문.
5월 9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경남지부 계간지 「TERanO」(편집장 허성) 창간. 통권 10호(1985년)로 종간.
7월 4일 부산경남지부 기관지 「TERanidO」(초대 편집장 채흥기) 창간.
10월 13일 부산지역 에스페란티스토들이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경남지부(Busan Filio de Korea Esperanto-Asocio)로 편입 되어 조직을 갖춘 활동이 시작되다.
1982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하. 부지부장: 선용 ‧ 이동영. 총무: 허성.
박지홍 교수(부산대학교) ‘에스페란토와 우리말의 견줌’ 등 에스페란토문법과 에스페란토 지도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다. (이후 ‘84년, ‘86년, ‘89년, ‘90년에도 발표).
이장헌, 정충규, 신의기(동아대), 김현욱(산업대) 에스페란토 입문.
1983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하. 부지부장: 선용 ‧ 이동영. 총무: 허성.
9월 동아대학 에스페란토 학회 회보 「Fonto」 창간호 나옴.
심강보, 김성일, 최동영, 김영칠, 박운정 등 에스페란토 입문.
1월 공길윤(독학), 허희귀(동아대), 최성대, 강상보, 박연수, 정명희, 김철식(Lumturo), 이승훈(대중강습-강사 장정렬) 에스페란토 입문함.
1985년 부산경남지부장: 선용. 부지부장: 성태기 ‧ 이동영 ‧ 정찬종. 총무: 최향숙
박기홍, 박현웅, 강근재, 이영희 등 동아대에서 에스페란토 배움.
1986년 부산경남지부장: 선용. 부지부장: 성태기 ‧ 이동영 ‧ 정찬종. 총무: 최향숙
1월 대중강습(강사 오기숙)에서 노혜경, 백승훈 등 에스페란토 입문.
이선애, 고용석(오기숙 개인지도) 에스페란토 입문.
3월, 동구 초량3동에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경남지부 사무실 개설(Domo 기금을 모금으로 확보함).
1987년 부산경남지부장: 선용. 부지부장: 성태기 ‧ 정찬종 ‧ 조일록. 총무: 오기숙.
7월 25일-26일 한국에스페란토청년회가 제1차 한국청년대회를 부산에서 개최하다. 104명 참가.
1988년 부산경남지부장: 선용. 부지부장: 성태기 ‧ 정찬종 ‧ 조일록. 총무: 최성대.
1989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심성보 ‧ 장정렬 ‧ 조일록. 총무: 정명희.
9월 4일 부산경남지부 기관지 「TERanidO」 통권 100호 발간하다.
3월 13일 산수 이종률 선생 별세.
10월 부산공업대학 에스페란토회 발족(회장 김화영).
1990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심성보 ‧ 장정렬 ‧ 조일록. 총무: 이승복.
1991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장정렬. 총무: 오기숙.
10월 5-6일 제23차 한국에스페란토대회를 부산 동래 금강유스호스텔에서 개최하다. 250명 참가.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대중강습 (강사: 노혜경), 정상섭(부산일보 기자), 정애금 입문.
1992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장정렬. 총무: 곽정희.
7월 부산경남지부 기관지 TERanidO 창간 11주년 축하연.
1993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전병연 ‧ 조영구. 총무: 곽정희.
1994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조영구. 총무: 박청은
7월 제79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서울)에 부산회원들 대거 참가하다.
1995년 부산경남지부장: 성태기.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조영구. 총무: 김현실
TERanidO 132호 발간.
1996년 부산경남지부장: 강상보.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조영구. 총무: 김현실.
1997년 부산경남지부장: 강상보. 부지부장: 배삼룡 ‧ 류재경 ‧ 조영구. 총무: 김현실.
시민강습회(허성 지도) 배혜경 입문.
1998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현. 총무: 최향숙.
1월 시민강습회(허성, 장정렬 지도) 김정순 입문.
8월 부산에스페란토문화원(Pusana Esperanto-Centro: 초대원장 장정렬)을 지산 간호보건학원 내에 개설.
정혜영(Sveka) 입문.
1999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현. 총무: 최향숙.
시민강습회(허성 ‧ 장정렬 지도). 김정순 입문.
2000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현. 총무: 최향숙.
8월 19일-20일 제32차 한국에스페란토대회를 부산 해운대에서 개최하다. 133명 참가.
2001년 부산경남지부장: 이종현. 부지부장: 제경호 ‧ 이옥자. 총무: 최향숙.
시민강습회(장정렬 지도), 김민정 입문.
시민강습회(장정렬 지도). 한영성(Hanpin) 입문.
2002년 부산경남지부장: 제경호. 부지부장: 공길윤 ‧ 이옥자. 총무: 정현주
2003년 부산경남지부장: 제경호. 부지부장: 공길윤. 총무: 정현주.
5월 시민강습회(강사-공길윤) 김기래(Vena), 박용승(Nema).
부산경남지부장: 제경호. 부지부장: 공길윤. 총무: 이혜영.
2004년 부산경남지부장: 배종태. 부지부장 이홍진 ‧ 최상범. 총무: 이혜영.
1월 시민강습회(강사-박용승) 김성일(Masoris), 하경화(Harna), 추백화(Beka),
이영화 (Papilia) 에스페란토 입문.
2005년 부산경남지부장: 배종태. 부지부장 이홍진 ‧ 정현주 ‧ 최상범. 총무: 이혜영.
2006년 부산경남지부장: 최상범. 부지부장: 박용승 ‧ 이소영. 총무: 백순조.
2007년 부산경남지부장: 최상범. 부지부장: 박용승 ‧ 이소영. 총무: 백순조.
1월 강습회(강사 -공길윤) 19명 참가. 김일철(Tero) 입문.
2월 7일~10월 6일 부산일보 ‘지구촌-e메일 인터뷰’란에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 인터뷰 기사 실림. 리쉬쥔(중국, 번역가), 미네 요시타카(일본, 편집인), 이스트반 네메르(헝가리, 작가), 스포멘카 스티메치(크로아티아, 작가), 클라리타 벨리코바(불가리아, 세계에스페란토스포츠연맹 회장) 등이 소개됨.
2008년 부산경남지부장: 배종태. 부지부장: 백순조 ‧ 장정렬. 총무: 박용승.
5월 3일 제10회 선구자의 날, 고 이종하 선생(전 부산경성대 교수)을 기리는 행사를 경북대학교에서 열고 「민중의 벗 여민 이종하 선생」(장정렬 편, 한국에스페란토협회)을 발간하다.
1월 31일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경남지부 「TERanidO」 속간(133호~, 장정렬 편집) 인터넷 판으로 내다. 2012년 4월 현재, 통권 185호 발행.
10월 18일-19일 제40회 한국에스페란토대회가 오마이랜드 부산에서 개최되다. 약 200명 참가. 2012년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부산에 유치하기 위하여 이 대회에 Osmo Buller 세계에스페란토협회 사무총장을 초청하였으나, 2012년 세계대회는 베트남 하노이로 결정되다.
10월 19일 부산경남지부장을 역임한 이종현 선생 별세하다.
2009년 부산경남지부장: 배종태. 부지부장: 백순조 ‧ 장정렬. 총무: 박용승.
2009~10년에 들어 부산경남지부 회원들의 국제적 활약이 두드러진다. 장정렬, 오기숙, 박용승이 일본 오오사카에서 연례행사로 열리는 Friska Lernejo의 강사로 초청받음.
2010년 부산경남지부장: 박용승.
2011년 부산경남지부장: 박용승.
3월 「Etero kaj Vento kaj Steloj kaj Poemoj」(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시집, 장정렬 옮김)을 발간하다.
5월 14일 제13회 선구자의 날, 고 이종률 선생을 기리는 행사를 부산 민주공원에서 갖고 「에스페란티스토 민족사인 이종률 선생」(허성 ․ 장정렬 편저, 한국에스페란토협회)을 발행하다.
8월 30일 두메 박지홍(1924년 생, 국어학자) 선생 별세하다.
2012년 부산경남지부장: 박용승.
2월 「정글의 아들 쿠메와와」(티보르 세켈리 지음, 장정렬 옮김, 실천문학사)가 발행되다.
5월 12일 제14회 선구자의 날, 두메 박지홍 선생을 기리는 행사를 부산교육대학교에서 개최하고, 「겨레와 겨레말을 사랑한 에스페란티스토, 두메 박지홍」(오기숙 ․ 박기완 ․ 심강보 ․ 장정렬 편저, 한국에스페란토협회)을 발행하다.
<정리: 장정렬 ‧ 오기숙 ‧ 김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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